“전혀 검토 안 한다”는 9900원 K-교통패스… 상상력을 발휘하라

큰사진보기 지난 10일 오전 출근 시간 시민들이 붐비는 서울 1호선 시청역을 빠져 나가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출근 시간 시민들이 붐비는 서울 1호선 시청역을 빠져 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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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국민제안 톱10’ 투표에서 ‘9900원 K-교통패스’라는 제안이 화제가 됐다. 윤석열 정부가 추석 민생대책에 교통패스를 포함시킬 것인지에 잠시 관심이 쏠렸지만, 지난 4일 정부는 “월 9900원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 교통패스 발급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래도 고유가 상황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기존의 유류세 인하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시적인 유류세 인하만으로 정말 충분한 걸까. 유류세를 인하해도 정유사와 주유소가 인하분을 전부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국민 부담 완화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고물가 시대를 맞이한 지금, 세계 각국의 정부는 민중의 생계 위기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단순 세금 감면과 저소득층 지원에 머물지 않는다. 재정 투입을 통한 공공성 강화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시행한다. 먼저 9900원 K-교통패스의 원조인 독일의 ‘9유로 티켓’ 이야기부터 해보자.

[독일] 9유로 티켓과 최저임금 인상
 

큰사진보기 독일 9유로 티켓. 월 9유로 티켓 한 장으로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독일 9유로 티켓. 월 9유로 티켓 한 장으로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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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유로 티켓’은 독일 정부가 고유가와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한 정책이다. 유류세 인하, 소득세 인하, 취약계층 수당 등 다른 민생 정책과 함께 패키지로 추진됐다. 

독일 정부가 판매한 티켓의 가격은 당연히 9유로(약 1만2000원). 2022년 6월에서 8월까지 3개월간 고속철도와 고속버스를 제외한 기차·버스·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다.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이 티켓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지난 6월에만 2100만 명이 티켓을 샀다.

9유로 티켓 정책을 시행한 결과, 독일의 대중교통 이용자가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보다 10~15% 증가했다고 한다. 도로 교통량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6% 감소했고, 그 결과로 독일 내 휘발윳값도 하락했다고 한다.

독일 정부는 3개월간 이 정책을 시행하는 데 소요된 예산이 25억 유로(약 3조4000억 원)라고 밝혔다. 그리고 현재는 이 정책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또 독일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조치도 병행한다. 2022년 1월 독일의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9.82유로(약 1만3170원)였으나, 지난 2월 내각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합의하고 지난 6월 의회에서 ‘최저임금 시간당 12유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오는 10월 1일부터는 시간당 12.0유로(약 1만6000원)로 대폭 인상된다.

독일 노동부장관 후베르투스 헤일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 1700유로(약 228만 원)를 버는 사람들의 월 소득이 400유로(약 53만 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단다. 그리고 약 620만 명의 노동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추정된다.

[스페인] 4개월간 대중교통 무료

사회당이 집권하고 있는 스페인에서는 아예 4개월간 대중교통 요금을 무료화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보증금 10유로(약 1만3334원)만 내면 9월부터 12월까지 스페인의 공공 열차 네트워크 ‘렌페(Renfe)’가 운영하는 열차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정한 탑승 회수를 채우면 보증금은 추후에 돌려받기 때문에 사실상의 한시적 무료화 정책이다.

스페인 정부는 이미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국영으로 운영되는 대중교통 요금을 50% 낮춘 상태였다. 그리고 지난 7월 중순에 다시 일부 국영 교통편에 대해 한시적 무료화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스페인 정부는 이 사업에 2억100만 유로(약 2698억 원)를 투입한다.

특히 스페인은 이 사업의 재원을 ‘횡재세’로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스페인 정부는 내년부터 2년간 은행과 에너지 기업의 초과 수익에 대해 ‘횡재세(법인세 세율 10% 상향)’를 부과하기로 했다. 은행들과 일정 규모 이상의 에너지 기업들로부터 각각 30억 유로(약 4조280억 원), 40억 유로(약 5조3707억 원)를 추가 징수할 예정이다.

스페인 정부는 횡재세로 늘어난 세수를 이용해 취약계층 지원과 무상 대중교통 등의 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수도 마드리드에 공공주택 1만2000가구를 짓는다는 계획도 내놨다. 부자의 곳간에 추가로 쌓인 재물을 이용해서 취약계층 지원과 공공성 강화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화끈한 생계비 지원책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를 넘어서면서 대다수 시민과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하락했다. 특히 저소득 가구는 생필품 구매조차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이에 영국 중앙정부가 2월과 3월에 각각 생계비 지원책을 내놓긴 했지만, 위기를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지난 5월말 다시 150억 파운드(약 23조8293억 원) 규모의 ‘에너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22년 가을 전체 가구의 전기·가스비 납부액을 400파운드(약 63만 원) 일괄 감면
▲ 저소득층 800만 가구에 650파운드(약 102만 원)의 현금 급여 추가 지급
▲ 66세 이상 노인 대다수에게 난방보조금 300파운드(약 47만 원) 추가 지급
▲ 장애 관련 수급자 600만 명에게 150파운드(약 24만 원) 추가 지급

영국 정부도 석유 및 가스 기업들에 25%의 횡재세를 부과한다. 보수당 정권은 그동안 노동당의 횡재세 제안을 거부했는데, 국민들의 생계비 위기가 심각해지자 입장을 바꿨다. 영국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횡재세를 통해 연간 50억 파운드(7조9431억 원)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결론]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고물가 대책은 필수

이 기사에서 소개한 정책들은 세계 각국 정부의 고물가 대책의 일부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나라도 있고, 재정을 투입해서 공공 서비스를 무료화하는 나라도 있고, 부자 증세를 통해 취약계층을 적극 지원하는 나라도 있다.

중요한 점은 어느 나라의 어느 정권이든 간에 국민의 생계 지원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 정부가 중점을 두는 유류세 감면과 농축산물 가격 후려치기 같은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불어삶 홈페이지(www.livewithall.org)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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